애간장을 녹이며 본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드디어 끝났다. 감정 소모가 유난히 많았던 드라마였던 것 같다.

 몇 년 동안 하지도 않던 블로그에 글까지 쓰게 만든 드라마.. 아주 요물~~~ ㅎㅎ

 

 드라마가 끝난 후, 지금까지도 무언가를 끄적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드라마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행복한 2013년 마무리란 생각이 들 정도로... PD, 작가, 제작진들에게 박수를.. 특히 작가들에게..

 

 남편 찾기의 과열로 막판에, 특히 17회 이후부터 아주 엄청난 욕을 먹긴 했지만 말이다. 17회까지 봤을 때, 남편이 누구인지는 대략 감이 잡혔다. PD가 인터뷰에서 키스했다고 다 결혼하냐고 했었던, 쓰레기가 나정과 키스하는 씬 이후 했던 말이 기억나지만, 그럼에도 17회까지 보고는 확신했다. 물론 프로포즈했다고 다 결혼하냐고 말했다면 맞는 말이지만, 17회까지 이어온 내용이 뒤집어지지 않는 한은 남편이 누군지는 짐작이 가능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욕을 먹었을까. 나레기 지지들에게는 어이없게 헤어지고 확정된 남편인 줄 알았더니 칠봉이를 등장시켜 짜증나게 한다고, 사이다 지지다들에게는 칠봉이가 남편인가 생각하게 하면서도 또 괜한 낚시를 하는 건가 하는 짜증으로... ㅋㅋㅋ 재미있는 것은 사이다 지지자들도 괜한 낚시로 칠봉이를 이용하지 말라고 했다는 점이다. 그건 그들도 드라마가 이어온 내용에 따라 칠봉이와 연결된다는 것이 아주 큰 반전이 없는 한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 아니었을까? 특히 2013년 현재의 모습이 계속 나온 상황에서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고 해도 나정과 쓰레기가 계속 만들어온 이야기는 그렇게 될 수가 없었으니까...

 

 17회 이후, 응사 PD는 남편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 안 되었다. 그 말 때문에 더욱 응사가 낚시니 남편찾기로 짜증 유발이라느니 말이 많았고, 두 팬들끼리 괜한 넷 상 다툼까지 만들었으니까. 한 마디로 시청자를 바보로 만드는 것 같았기 때문에 화가 났던 것이다. 복선 등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17회까지 쭉 이어온 내용, 서사를 봤을 때 남편은 감이 잡히는 상황이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옳은 답은 "시청자가 지금까지 드라마를 보시면서 캐릭터 성격, 개연성과 논리성 등을 따졌을 때, 가장 들어맞는 사람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이 남편이다."라는 말이다. 그때까지 남편을 정하지 않았고, 남편을 모른다는 말로 흥미를 유발하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응사의 남편 찾기 짜증에는 PD도 한 몫했다고 본다. ^^;

 

 만약 사이다 지지자들의 바람대로, 18회 때 그렇게 헤어지지 않은 채로 단 몇 분의 나레이션으로 나레기가 헤어진 이후 칠봉이 등장한 건 그가 남편이기 때문이다, 그 바람대로, 정말 그 이유로 칠봉이가 등장한 거라면 18회 때 나레기가 그런 식으로 헤어지면 안 됐다. 나레기 지지자들의 분통을 터트린, 물론 현실적이다,는 말을 듣긴 했었던 이별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식으로 헤어질 거면 그 전까지 쭉 이어온 내용을 뒤엎는 거였으니까. 한 마디로 그들의 그 이상한 헤어짐은 뭔가 뒷내용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아, 나레기가 정말 부부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했다. 헤어지려면 제대로 헤어졌어야 했던 것이다. 아니면 어떤 드라마 속의 캐릭터들처럼 쓰레기를 딴세상으로 보내버리거나...  ^^;;  ㅋㅋㅋ

 

 그리고 등장한 칠봉. 사실 칠봉이는 등장할 타이밍이기는 했다. 17회까지 짝사랑 캐릭터로만 머물렀고, 어떻게 보면 칠봉팬들이 분통을 터틀릴 만한, 존재감(방송 출연 시간)이 너무 적었으니까. 성장을 다룬다는 부제 안에서 칠봉이만이 적은 존재감으로 성장한 모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는 가장 크게 성장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나정이가 어장관리녀라느니 칠봉이가 스토커라느니 등등 정말 말이 많았던 19, 20회를 통해 제작진이 칠봉이를 정말 멋진 짝사랑남으로, 멋진 성장으로 그려주어서 정말 좋았다. 그의 성장이 짝사랑을 끝내는 것이었다니,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뒤통수였다. ㅎㅎ

 

 앞에도 적었지만 만약 칠봉이와 나정이를 이어주려 했다면 17회, 18회까지 내용이 그렇게 이어지면 안 되었던 거고 결정적으로 19회, 20회에서 나정의 행동이 그렇게 표현되면 안 됐다. 나정이는 단 한 순간도 칠봉이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칠봉이가 예의 그 돌직구 스타일로 옆에 계속 함께 하며 고백 했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19회 말미에 등장한, 정말 운명 같은 쓰레기, 나정의 만남. 어쩌면 칠봉 지지자들은 왜 쓰레기가 거기에 있는 거냐, 왜 등장해서 둘 사이 망치느냐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둘은 어쨌든 만났어야 했다. 어떤 식으로 만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그 엘리베이터 씬이라니~ 다시 한 번 감탄. 그리고 결정적인 20회.

 

 쓰레기의 전화 예고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헤어지자는 말을 할 것이다,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할 것이다, 등등 의견이 분분했는데 여기서도 작은 뒤통수... 그들의 아픈 이별의 이유를, 그들이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을 확.실.히. 보여준 만남이었다. 작가에게 또 감탄... 쓰레기가 원래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그렇기에 다시 한 번 그 커플에게 힘이 실린 만남.

 

 헤어지지 않은 채로 헤어진, 잊지 못하는 두 사람이 쓰레기의 전화통화로 만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의 그 이상한 이별이 사실은 너무 사랑해서 한 배려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나정이는 울고. 쓰레기는 아프고. 20회에서도 칠봉이와 나정이가 계속 함께했지만 둘은 결코 함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칠봉이는 성장하기 위해 나정이와 그렇게 만나야 했던 것이다. 짝사랑을 끝내는 그 심적 성장을 위해서.

 

 헤어졌지만 헤어지지 않았던 그 커플이 만나고, 나정이의 가족이자 동생이란 말을 듣고 난 후 쓰레기의 지독한 감기 몸살.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은, 몇 회에선가 힘든 레지던트 생활도 쓰성이니까 버틴다는 빙그레의 말처럼, 강철 체력의 쓰레기가 나정과의 오랜만의 그 만남 이후(아마 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적은 없었을 거다. 연락도 안 하면서) 아프다니~~ 단 몇 장면 안 나왔고 그나마 주변인들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드러나는 쓰레기의 그 마음. 내용의 디테일에 놀랐다. 아픈 쓰레기가 자신이 아프다며 와달라는 문자를 나정이에게 보내도록, 그들의 헤어지지 않은 이별이 다시 사랑으로 가기 위한 과정을 쓰레기의 아픔으로 보여주다니... 쓰레기의 감정선은 전혀 나오지 않았지만 서로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헤어지게 됐다는 나정이의 말을 듣고 아픈 와중에 고민하며 그런 문자를 다시 보냈을 것이란 것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그 문자를 보냄으로써, 제대로 헤어지거나 다시 시작하거나...

 

 쓰레기가 아프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혹시나 나정이가 그에게 달려갈까봐 매달리는 칠봉이가 약봉지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그와 있는 와중에 나정이가 쓰레기에게 갔다면, 칠봉이는 버림받는, 정말 우울한 짝사랑 캐릭터가 되었을 것이다. 나정이가 안 갔을 수도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쓰레기, 쓰성, 재준 오빠의 문자를 받고 펑펑 우는 장면이 등장한 것으로 봐서는 그럴 리가 없다. 그렇기에 칠봉이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는, 심적 성장을 하는 부분이 감동이었다. 칠봉이를 불쌍하게 만들어주지 않아서... 칠봉이는 약봉지를 통해 자신이 예전 그랬던 맘으로 나정이 역시 쓰레기에게 그런 맘을 아직 갖고 있구나, 쓰레기를 만난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했던 그녀가, 약봉지 하날 주지 못하고 갖고 다니는 그 맘을 칠봉이가 느낀 그 장면은 정말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워낙 많은 말을 들었던 회였지만, 19회와 20회가 참 좋았다. 칠봉이의 멋진 성장을 그려준 것도, 나레기 커플의 멋진 성장도 다 좋았다. 사랑은 배려만으로는 그 사랑이라는 마음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도. 둘의 만남을 칠봉이가 다시 이어주었다느니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위에 쓴 것처럼, 칠봉이가 퇴원을 하지 않았어도 나정이는 쓰레기 문자에 달려갔을 테니까. 둘의 헤어짐은 둘의 문제였고, 다시 만나는 것도 순전히 둘만의 이야기였다(콜닥터님의 리뷰를 보면 정말 감탄하는데, 거기에 제대로 표현되어 있다).

 

 작가에게 반하고, 정말 내용을 짜임새 있게 잘 썼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음에는 쓸데없는, 일명 남편찾기 낚시 드립은 안 했으면 좋겠다. 뻔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각 캐릭터 하나하나를 참 멋있게 그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쁘고 공감갈 내용들이었으니까. 물론 그 캐릭터를 워낙 좋아해서 그 캐릭터와 여자주인공이 이어지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캐릭터가 아닌 전체 내용을 봤을 때, 그 둘이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은 뻔했다. 아무리 남편 한 번 찾아보소~라고 복선 깔고(복선의 디테일이나 소품 활용은 매번 감탄했지만~!) 헷갈리게 하는 장면 넣고 그랬어도(21회에서 헷갈리는 장면들은 모두 쓰레기로 귀결되었지만... 특히 결혼식 장면 대역은 최악이었던 것 같다. 나 대역이오... 너무 티났다고 할까. 그런 디테일이 살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그리고 김민종 축가씬... 그것은 안 밝혀졌네) 응사의 감성과 15회 넘어서고 이어진 서사를 봤을 때, 남편은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시청자가 정말 몰랐을까. 시청자는 바보가 아니다.

 

 초반까지만 쭉 짜임새 있게 이어오고 1/3이 지난 시점에서부터는 21회에서처럼 제대로 확인하는 장면이 안 나와도, 낚시 드립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았을 텐데... 다 드러난 것을 끝에 보여준다는 그 원칙을 지키려다 보니 원성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예상했어도 21회에서 김재준이라는 이름표가 클로즈업 되는 순간에 솔직히 감동 받은 것도 사실이긴 했지만~~ 연출이 참 좋았다... 

 

 쓰레기, 나정, 삼천포, 해태, 빙그레, 윤진, 칠봉, 성동일, 이일화. 이들이 만들어낸 이 드라마 속 이야기를 다시 못 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재미있었던, 즐거웠고 아련했던 드라마였다. 당시 노래들과 함께 감성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던... 이 응사를 어떻게, 언제 보내야 한단 말인가.. 블로그에 글이라도 끄적이면 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들 모두 첫사랑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그 판타지에 기분이 좋고 행복하면서도 씁쓸해지는 이 기분. 응사라는 드라마의 판타지는 현실에선 어렵기에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응사, 한동안 다시 못 만날 좋은 드라마였다. 내가 비록 그때 그 시대보단 어려도... 감성과 감정은 세월이 흘러도 통하니까... 아 빨리 현실로 돌아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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